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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등사 > 아도화상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국교로 인정받은 것은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의 일이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고구려가 삼국 중 가장 먼저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 당시 일반 백성들 사이에는 불교의 저변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대개 새로운 종교는 일반화 과정이 진행된 후 왕실이나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선포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소수림왕이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자 전진의 부견왕은 법사인 순도(順道)와 불상, 불경 등을 고구려 왕실로 보냈다. 소수림왕은 성문사(373년 창건)와 이불란사(375년 창건)를 짓게 하고 성문사에는 순도, 이불란사에는 아도로 하여금 머물게 했다. 따라서 이 두 절은 한국 최초의 사찰로 기록되고 있다.
한편 불교가 공인된 것은 384년(침류왕 1)이었다. 인도의 고승인 마라난타가 동진으로부터 서해를 건너 당시 백제의 서울인 남한산에 이르렀다. 침류왕은 마라난타를 궁 안에 머물게 하면서 백제인 10여 명을 출가시켜 제자로 삼게 하였다.
고구려, 백제와는 달리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인정한 것은 150여 년이 지난 뒤였다.
하지만 신라 눌지왕(재위 : 417~458) 때 이미 아도 화상이 ‘묵호자’라는 이름으로 모례의 집에 숨어 지내며 몇몇 절을 세우고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시절 아도 화상은 눌지왕의 딸 성곡 공주의 병을 고쳐준 일로 눌지왕에게 크게 인정받았다. 그래서 아도는 눌지왕의 도움으로 흥륜사 등 7개 사찰을 신라 땅에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눌지왕이 세상을 떠나자 신라 조정에서는 다시금 불교를 박해하기 시작해 아도는 하는 수 없이 금수굴(金水窟)이라는 토굴에서 숨어 지내야만 했다.
지금도 경북 구미시 해평면에는 아도 화상의 행적을 기리는 아도 화상 사적비(경북 유형문화재 제291호)가 세워져 있다.
한국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의 묘에 들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묘비함과 뚜껑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12장의 점토판(왼쪽). 뚜껑에 쓰인 글씨 오른쪽 첫째 줄에 진태원병자칠년(晉太元丙子七年), 둘째 줄에 국견내성 초문사(國甄內城 肖門寺)라는 한자가 뚜렷하다.
(동아일보사 신원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