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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2월 초하루 법문 175.210.173.195
관리자 2018-03-18 12:18:57 264
2월 초하루 법회 법문

벌써 음력으로 2월입니다. 참 세월이 빠르게 지납니다.
제가 엊그제 중년의 거사님한테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자기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허리가 굽고, 거동이 불편하고, 빼빼 말라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고 하더군요. 또, 이런 어머니를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하니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아주 좋은 것이며 인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더 한 번 생각해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해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孝입니다. 그냥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몇 번이나 더 뵐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서 끝난다면 올바른 결말이 아닙니다.

수험생이 있는 어머니는 자식이 합격하길 바라고, 갓난아기가 있는 어머니는 잘 크기 바라고, 직장이 없는 자녀를 둔 어머니는 직장을 얻길 바랍니다. 이렇듯 인간이 바라는 원들은 백 천 가지가 넘을 듯합니다. 이런 백 천 가지 소원을 이루어야죠? 하지만 이런 소원들을 어떻게 이루냐가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 서울을 가려면 다양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 자가용을 타고 가는 방법, 다른 사람들의 차를 얻어 타고 가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수행도 똑 같습니다. 내가 어떤 수행을 통해서 나의 편안함을 얻고, 우리 가정의 편안함을 얻고, 사회의 편안함을 얻으며 더 나가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수행에는 간경, 독경, 염불, 절, 참선, 다라니 등 다양한 방편이 있습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자신이 어떤 수행을 통해 어떻게 어디까지 가야할지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목표가 없다면 갈 수가 없습니다. 목표를 꼭 세워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욕계에는 진리眞理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출가를 한 뒤 많은 선지식을 만나 진리를 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진리를 얻지 못하자 스스로 공부를 하러 가셨습니다. 대구 달성군 유가사 대웅전 주련을 보면 <世尊當入雪山中 세존당입설산중>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세존께서 설산에 들어가서 수행을 했다>는 말입니다. 제가 예전에는 눈이 많이 쌓인 히말라야를 설산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림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보니 설산은 그런 설산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제가 보리수나무가 무엇이라 했나요? 보리수나무는 바로 <나>입니다. 내가 보리수입니다. 내 몸이 보리수입니다. 이 몸을 가지고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육조단경에서 신수스님이 <身是菩提樹 신시보리수>라 <몸은 보리의 나무요>라고 했습니다. 조사스님들이 이렇게 밝혔는데도 부처님께서 깨달았다는 보리수나무만을 귀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내 몸은 귀중하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내 몸을 관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리수는 내 몸뚱이입니다.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내 몸을 관찰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법문 이후에는 밖의 보리수를 찾지 말고 내 몸의 보리수를 관찰하길 바랍니다. 설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년설이 덮여 있는 히말라야 산이 아닙니다. 설산은 내 몸이 가장 청정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를 설산이라 합니다. 부처님이 6년 고행을 하는 동안 하루 한 끼만을 드셨습니다. 하루 한 끼를 드시면서도 양은 아주 조금밖에 드시질 않으셨습니다. 하루에 곡식 3알만을 드셨다고 하니 아주 적은 양으로 지내신 겁니다. 부처님 당시 힌두교 성자인 <마하비라>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삼십년 동안 주먹 밥 하나 만을 드셨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 중에 가장 크고 혹독한 고행으로 수행을 하신 분입니다. 6년 동안 그렇게 청정하면서도 혹독하게 고행을 했지만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고행 자체가 깨달음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부처님께서는 6년 동안 아주 깨끗하고 청정하게 수행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世尊當入雪山中 세존당입설산중>입니다. 그 다음은 <一坐不知經六年 일좌부지육년경>으로 <한 번 앉아 여섯 해 지도록 내 몸이 보리수라는 것을 몰랐다>는 말입니다. 한 자리에 앉아서 육년이 지나도록 깨닫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깨닫지 못하신 부처님께서는 강가에서 목욕을 한 뒤 수자타로부터 우유죽을 공양 받습니다. 우유죽을 드신 부처님은 힘을 찾은 뒤 다시 결심을 하십니다. <내가 깨닫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며 다짐을 한 뒤 하루 동안 앉아있는데 <因見明星云悟道 인견명성운오도>라. <새벽 별을 보고 오도에 이르셨다>는 말입니다. 깨달음을 이루셨다는 말입니다. 왜 자신을 관찰해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새벽 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을까? 그 새벽 별은 하늘에 있는 것인가? 내 몸에 있는 것인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거기에도 숨겨진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별을 보아도 깨닫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하늘의 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자신의 마음에 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이렇듯 부처님께서는 별을 보시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주련의 마지막 주절은 <言詮消息遍三千 언전소식변삼천>이라. 말씀 언자에 설명할 전자입니다.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소식이 끊겼다>는 말입니다. 삼천대천세계라는 것은 소천세계가 천 개 모여 중천을 이루고 중천세계 천 개가 모여 대천을 이루고 대천세계도 천 개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너무 수리적이니 여기서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모든 소식이 끊겼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소식이 무슨 소식일까요? 무명이 타파되었다는 말입니다. 재미있는 말은 오도悟道입니다. 우리가 법회때 마지막으로 하는 사홍서원의 내용을 보면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입니다. 여기서 법法과 도道는 어떻게 다른 건가요? 우리가 법을 다 깨치면 중생들을 교화해야 합니다. 도는 육도六道를 말합니다. 천상天上 · 인간人間 · 아수라阿修羅 · 축생畜生 · 아귀餓鬼 · 지옥地獄의 육도를 다니며 중생들을 교화하거나 지장보살님처럼 서원을 세워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는 것을 불도를 이룬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여러분들은 보살로써 끝까지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배우면서 가르치고 가르치면서 배워야 합니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한문의 속뜻을 모르면 진정한 가르침을 놓칠 수 있습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들은 두 가지는 확실하게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첫째, 보리수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내가 보리수입니다. 둘째, 설산은 가장 청정한 상태에 있을 때, 깨달음 직전에 있을 때를 설산이라고 합니다. 바로 내 몸이 설산입니다. 불교는 자기 자신을 떠나지 않습니다. 깨달음이란 것도 나를 떠나서는 없는 것입니다. 육조단경에서는 자성청정을 이야기 합니다. 다섯 가지 청정을 이야기 하는데 이 청정함이 설산입니다. 설산도 내 몸이고, 보리수도 내 몸입니다. 아직은 설산이 되지 못하고, 보리수가 되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여기 계신 불자님들은 모두 설산과 보리수가 될 것입니다. 열심히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길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