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섬 기행] 전등사 종루의 사물과 청동수조-인천투데이 2020.12.7 > 언론속전등사

본문 바로가기
언론속전등사
참여마당 언론속전등사

뉴스 [인천 섬 기행] 전등사 종루의 사물과 청동수조-인천투데이 2020.12.7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235회 작성일 20-12-07 13:38

본문

[천영기 선생의 인천 섬 기행] 천혜의 요새 삼랑성과 전등사 ⑧

풍경과 하나 되어

보통 산사에 들어서면 대웅전 마당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이 되게 양 옆에 건물이 들어서있는데, 현재 전등사는 우측으로 강설당 건물이 있으나 좌측은 개방된 구조로 바뀌어 사찰의 중심이 약사전으로 옮겨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원래는 강설당과 마주보고 적묵당이 있었는데 대웅전에 거의 맞붙어있어 화재 위험이 있고 대웅보전 앞마당이 너무 좁아 1973년에 해체해 종각 옆으로 이전했다.

종각에서 바라본 전등사 전각들.종각에서 바라본 전등사 전각들.

전등사는 계속 사세(寺勢)가 확장돼 산지를 이용해 건물들을 늘렸기에 대체적으로 산자락을 따라 횡으로 건물들이 늘어섰다. 철종(鐵鍾)이 있는 종각 옆에서 뒤를 돌아보면 전등사의 주요 전각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마당 한가운데 가지를 뒤틀어 균형을 잡고 있는 느티나무가 인상적이다. 대략 400여 년 됐다고 하니, 1614년(광해군 6)에 전등사가 화재로 다 타버리고 다시 지을 때 심은 풍치목으로 추정된다.

전등사를 한 바퀴 돈 뒤 전각들을 눈에 담으며 여유로움을 즐긴다. 사물은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사람의 사고도 마찬가지다. 사물과 사건을 입체적으로 대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쉽지만은 않다. 이곳에 앉아 이런저런 상념을 따라가다 보면 옆에 새겨진 달마처럼 나도 풍경의 하나가 된다.

전등사 종루의 사물(四物)들

전등사 종루 안의 사물(四物).전등사 종루 안의 사물(四物).

일반적으로 사물(四物)은 농악에 쓰이는 네 가지 악기(꽹과리ㆍ징ㆍ북ㆍ장구)를 일컫는데, 불교에서는 의식에 사용하는 범종ㆍ법고ㆍ운판ㆍ목어를 일컫는다. 전등사 대조루 옆에 종루가 있고 이곳에 사물이 걸려있다.

이들은 조석 예불 때 사용하는데, 상징하는 의미는 각각 다르다. 범종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법고는 네 발 가진 길짐승인 축생을, 운판은 공중에 떠도는 영혼과 날짐승인 새들을, 목어는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을 제도(濟度, 미혹한 세상에서 중생을 건져내 생사 없는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게 함)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범종의 각부 명칭.범종의 각부 명칭.

전등사 범종(梵鐘)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범종의 형식적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 마치 항아리를 엎어놓은 것 같아 편안한 느낌을 준다. 범종은 종을 매다는 부분인 용뉴부(龍鈕部)와 몸체인 종신부(鍾身部)로 나뉜다.

중국과 일본 범종의 용뉴는 쌍용이 서로 머리를 반대 방향으로 이루고 있는 반면, 우리 범종의 용뉴는 용 한 마리로 구성돼있다. 이 용은 고래를 보면 무서워 울부짖는 용왕의 셋째아들 포뢰(葡牢)를 상징한다.

전등사 범종의 포뢰는 포효하듯 입을 한껏 벌려 종의 천장 부분인 천판을 물고, 구부린 등 뒤에는 대나무 형상을 한 음통(音筒)을 지고, 발톱에 잔뜩 힘을 줘 천판을 찍어 누르고 있는 형상이다. 금방이라도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다. 대나무 형상을 한 음통도 우리나라 범종에만 있는 것인데 내부는 비어있어 소리가 빠져 나오는 역할을 한다. 이곳으로 고주파 소리가 나오는데 종소리를 더 맑고 멀리 퍼지게 한다.

종신의 위아래에는 넓은 띠를 둘렀는데, 이를 상대(上帶)와 하대(下帶)라 한다. 상대와 하대, 그리고 상대 아래에 붙은 유곽(乳廓) 4개에 보상화(寶相華, 불교미술에서 쓰이는 상상의 꽃으로 상서로움을 의미함) 문양을 넣었다. 각각의 유곽 안에는 유두(乳頭) 9개가 배치돼있다.

유곽 안에 있는 돌기 모양을 멀리서 보면 젖꼭지로 착각할 수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연꽃 봉오리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를 ‘연뢰(蓮蕾, 연꽃 봉오리)’와 ‘연곽(蓮廓)’으로 칭하자는 움직임이 있는데, 적합한 이름인 것 같다.

종신의 조금 아래쪽에는 종을 치는 곳인 당좌(撞座)와 용을 타고 하늘을 나는 보살상이 양쪽에 새겨져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범종은 이런 형식적 특성도 중요하지만, 가장 으뜸은 종소리일 것이다.

잡음이 없는 맑은 소리를 내고, 맥놀이 현상에 의해 파도가 출렁거리듯 소리가 커지고 작아지는 것을 반복하며, 소리의 여운이 긴 것이 우리나라 범종의 특징이다. 노래 ‘학교 종이 땡땡땡’을 우리 종의 소리로 바꿔 ‘학교 종이 뎅뎅뎅’ 하고 불렀다면, 우리는 조금 더 여유롭게 살고 있지 않을까?

전등사 범종 용뉴, 용 발톱, 유곽과 유두, 하늘을 나는 보살상.전등사 범종 용뉴, 용 발톱, 유곽과 유두, 하늘을 나는 보살상.

범종의 오른쪽엔 법고, 왼쪽에는 목어, 뒤에는 운판이 걸려있다. 법고(法鼓)라는 이름은 세속의 북과 다름을 강조한 것으로 법음(法音)을 전하는 소리란 의미가 있다. 법고는 잘 건조된 나무로 북의 몸통을 만들고 몸통 양쪽에 가죽을 씌우는데, 한 쪽 면은 암소 가죽, 다른 쪽 면은 수소 가죽을 사용한다.

음양이 조화를 이뤄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한 방법이다. 법고의 몸통에는 용을 그렸는데 ‘산해경’에 나오는 용의 우두머리인 기룡(夔龍)이다. 기룡의 가죽으로 만든 북을 치면 소리가 500리까지 퍼져나간다고 한다.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기를 기원한 것이리라.

목어(木魚)는 나무로 고기 모양을 만들어 붙은 이름이다. 대개 잉어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 속이 비게 파낸 다음 배 부분 안쪽 양 벽을 나무막대기로 두드려 소리를 낸다.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모양이었으나 차차 용머리에 물고기의 몸을 취한 용두어신(龍頭魚身)의 모습으로 변했다.

전등사 목어도 용두어신의 형태를 취해 입에 붉은 여의주를 물고 있다.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항상 눈을 뜨고 정진하라는 의미를 지닌다. 스님들이 염불이나 독경을 할 때 치는 목탁이 바로 목어의 변형이다.

운판(雲版)은 청동이나 철로 구름 모양의 넓은 판을 만들었기에 붙은 이름이다. 운판이 언제부터 사용됐는 지 알 수 없지만 중국과 우리나라 선종(禪宗)에서는 식당이나 부엌에 달아 두고 대중에게 공양시간을 알리기 위해 울리는 기구로 사용했다.

죽이나 밥을 끓일 때 세번 치므로 화판(火板), 공양시간에는 길게 치므로 장판(長板)이라고도 했다. 전등사 운판엔 ‘江華 鼎足山 傳燈寺(강화 정족산 전등사)’라는 글자가 새겨져있고, 운판의 아래 중앙에는 범종과 마찬가지로 운판을 치는 당좌가 있다. 그 위 좌우로 쌍용이 발을 뻗어 여의주를 다투며, 운판의 상부 좌우로 구름 위에 뜬 해와 달을 새겼다. 조각이 정밀하고 꽤나 멋지다.

산사에 들렀는데 혹시 예불 시간이 돼 스님들이 사물을 치는 모습을 보면 바짝 앞으로 다가가 들어보길 바란다. 멀찌감치 떨어져 듣는 소리와 바로 앞에서 듣는 소리가 확연히 다르다. 바로 앞에서 들으면 법고와 범종의 소리를 가슴으로 들을 수 있다. 소리가 가슴을 때리고 온몸을 두드리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전등사 청동수조와 수조 내벽 자라 문양.전등사 청동수조와 수조 내벽 자라 문양.

전등사 청동수조(靑銅水槽)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46호인 ‘전등사 청동수조’는 예전에는 대웅보전 옆에 있었는데 지금은 대조루 앞으로 옮겨 유리판을 덮어 전시하고 있다. 고려 충렬왕 때 정화궁주가 시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명문(銘文, 금석이나 기물 등에 새겨 놓은 글)이나 제작과 관련된 글이 없어 고려 말이나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수조는 바리(스님들의 밥그릇) 형태로 구연부(口緣部, 대접ㆍ병ㆍ항아리 등의 입구)는 덧띠를 두르고 있으며, 지름 112cm와 높이 72cm로 꽤나 크다. 보통 사찰의 수조는 큰 돌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 쌀이나 그릇을 씻거나 김장철에 배추를 절이는 데 사용됐다.

전등사 청동수조는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수조 안에 물고기나 자라 모습이 조각돼있는 것을 봐서는 조경용으로 사용된 ‘물확(돌덩어리 중앙에 큰 홈을 파서 물을 담아 마당에 놓아두는 석물)’ 역할을 했거나 불을 끄기 위해 만든 수조로 보인다.

궁궐에 가면 ‘드무’라는 것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길상항(吉祥缸)이라 부른다. 드무에 물을 담아두면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불귀신이 불을 일으키러 왔다가 물에 비친 자기의 흉악한 몰골을 보고 놀라 달아난다고 하는 속설이 있다. 이 청동수조가 어떤 용도로 사용됐건 소중한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 천영기 선생은 2016년 2월 30여 년 교사생활을 마치고 향토사 공부를 계속 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인천 달빛기행’과 ‘인천 섬 기행’을 하고 있습니다.

인천투데이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텔레그램 보내기
  • 텀블러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X



회원로그인


(우:23050)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종무소 : 032-937-0125 팩스 : 032-232-5450
템플스테이 사무국 : 032-937-0152
COPYRIGHT 2006 전등사 ALL RIGHTS RESERVED.
그누보드5
(우:23050)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종무소 : 032-937-0125 팩스 : 032-232-5450 템플스테이 사무국 : 032-937-0152
COPYRIGHT ⓒ 2005~2021 전등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