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의 기본적인 예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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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서의 불자들이 지켜야 할 불자예절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
불교에는 불교만의 예절과 의례가 있습니다.
처음 불교를 접하는 불자는 불교 예절을 잘 알아야 편한 마음으로 불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 예절의 근본정신은 늘 부처님을 생각하고 가르침을 되 새기며 행하도록 도와주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절을 아는 것은 깨달음의 첫 걸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잘못을 반성하고 삶 속에서 다가오는 삿된 유혹을 물리치며 우환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하거나 스님을 찾아뵙고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개인의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식사를 할 때에 먼저 합장한 뒤에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며, 맛에 탐닉하거나 욕심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하루 일과를 걱정하거나 원망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품은 채 잠들지 말아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하루를 참되게 살아가도록 기도하거나 수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삼보에 귀의한 불자로서 평상시 모든 행이 겸허해야 하겠지만, 특히 수행 도량인 절에서는 더욱 정숙하고 경건한 자세가 기본입니다.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몸가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수행의 길에 수행자의 자세는 마음이 표현된 모습이므로 항상 경건하고 겸허한 자세가 기본이라 하겠습니다. |
사찰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알아봅니다. |
절은 거룩한 부처님을 모신 신성하고 장엄한 수행의 도량이며
참회의 도량이자 정진의 도량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밝고 맑은 마음의 자세는 물론, 도량에서 지켜야 할
예법도 바르게 알아 올바른 신행생활을 해야 합니다.
절에 갈 때에는 향·초·과일·꽃 등 부처님께 올릴 공양물을 준비하고 부처님의 말씀이 담겨진 경전과 법요집·염주 등도 준비해야 합니다. 절에서 지킬 일 첫째, 절에 들어가거나 나올 때는 일주문 앞에서 합장 반 배합니다. 둘째, 절에서는 정숙하며, 걸을 때는 공손히 손을 맞잡고 법당앞 어간(법당이나 큰 방 가운데 자리)을 지날 땐 합장 반 배합니다. 셋째, 절에서는 항상 몸가짐을 경건하게 하여 고성방가하거나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 스님을 뵙거나 법우끼리 만났을 경우 합장 반 배하면서 “성불하십시오”, “반갑습니다”, “참다운 불자가 됩시다” 등으로 인사합니다. 다섯째, 우리는 부처님의 아들·딸로서 스님들과 함께 절의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사찰에 있는 물건을 소중히 다뤄야 하고 북과 종·목탁 등을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됩니다. 여섯째, 자신의 물건을 스스로 잘 챙기며 남의 물건을 잘 살펴주어 맑고 밝은 도량 분위기를 항상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일곱째, 대부분 오래된 도량에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으므로 잘 지키고 가꾸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법당 출입 및 법당 안에서의 예절 |
법당을 출입할 때는 부처님 정면의 가운데 문으로 출입하지
아니하며, 양옆의 문으로 출입합니다. 두 손으로 받들어 문을 열고 닫으며, 신발은 나올 때 신기 편리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놓고 법당에 들어갑니다. 들어가서는 합장한 자세로 서서 반 배(선 자세로 합장하고
몸을 45 °~ 60°구부리는 절)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반 배한 후 뒷걸음으로 제자리에
돌아오면 되는데 부처님이 마주 보이는 정면(어간자리)은 큰 스님의 자리이니 절을 하거나 앉아 있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법당 안에서 주의할 일 경건한 마음으로 정숙한 행동을 합니다. |
향 올리는 법, 촛불 켜는 법 |
향 올리는 법 #향을 피울 때 이미 다른 불자가 향을 피워 향로 안에 향이 타고 있을 때는 가급적 향을 꽂지 않고 참배. 촛불 켜는 법 촛불은 촛불 끄는 도구를 사용하도록 합니다. 끌 때는 촛농이 흐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혹 끄는 도구가 없을 경우 촛불 뒤로 손을 가리고 끄도록 합니다. |
합장 하는 법 |
합장은 두 손바닥을 마주 모으는 자세인데, 손 모양을
먼저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두 손바닥 사이에 틈이 없다는 느낌이 들도록 서로 마주 댑니다.
그리고 두 손 각각 다섯 개의 손가락이 연꽃잎처럼 서로 밀착되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엄지손가락 또는 새끼손가락이 따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떨어지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합니다. 합장은 불자의 기본 자세로 합장을 통해서 나의 마음을 모으고, 나아가서 나와 남이 따로 없이 하나의 진리 위에 합쳐진 동일 생명이라는 무언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합장의 순서 합장의 순서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올바른 차수 자세를 취합니다. 또, 차수 자세에서 합장 자세로 들어갈 때에 앞에서 설명한 순서에 의하지 않고 불필요하게 큰 원을
그려 손을 이마 높이까지 올렸다가 합장 자세로 내려오는 긴 행동은 올바른 합장 순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단정하고 정확한 동작의 연속으로 합장 자세를 해야 합니다. |
절하는 법 |
부처님께 올리는 절은 오체투지(五體投地)의 큰 절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는 몸의 다섯 부분을 땅에 닿도록 납작하게 엎드려 절하는 예법으로 인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인도의 예법은 접족례(接足禮)라 하여 온 몸을 땅에 던져 절을 하면서 공경하는 이의 발을 두 손으로 떠받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행하는 오체투지의 큰 절은 우리 전래 예법인 큰 절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되 반드시 몸의 다섯 부분, 즉 두 팔꿈치와 두 무릎과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여야 합니다. 이 오체투지의 예는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몸의 동작으로서 가장 경건한 예법입니다. 지정한 예배는 마음속의 교만함이 없어야 하는데 이 오체투지의 예는 교만과 거만을 떨쳐버리는 행동 예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큰 절하는 동작을 순서대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무릎 꿇는 동작 땅에 댄 두 무릎은 나란히 붙어 있어야 하며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준비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보다 부드럽고, 공손한 예배동작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즉, 반 배하는 것처럼 허리를 약간만 굽히면서 두 무릎을 동시에 닿도록 하며, 이 동작이 완료되면 두 발을 세워서 땅을 딛고 있어야 합니다. 2. 오른손을 땅에 대는 동작 여기에서는 두 가지 동작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는 오른손으로 땅을 짚는 동작이고 다른 하나는 땅을 딛고 있는 발을 발등이 땅에 닿도록 깔고 앉는 동작입니다. 위의 무릎 꿇은 동작에서 땅을 딛고 있는 발을 펴서 발등이 땅에 닿도록 하되, 오른발이 아래에 놓이고 그 위에 왼발이 놓여져서 ‘X’자가 되게 합니다. 즉, 몸의 뒷부분 자세를 낮추는 동시에 발끝을 몸의 뒤로 밀면서 몸으로 발을 깔고 앉되, 두 발을 평행으로 하지 말고 오른발이 밑에 가도록 포개면 자연히 올바른 자세가 됩니다. 동시에 합장한 손을 풀어 오른손으로 오른쪽 무릎 앞의 땅을 짚되 이마가 땅에 닿을 위치를 고려하여 적당한 거리를 잡아야 합니다. 머리 속으로 다음 동작을 그려보면 쉽게 오른손의 위치를 정할 수 있습니다. 즉, 이마가 땅에 닿고 이마의 양 편에 두 손바닥이 위치하므로 위와 같이 왼손, 이마, 오른손의 위치를 머리 속으로 그려보면 오른손바닥이 놓여질 위치를 정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큰 절을 할 때에는 두 손으로 동시에 땅을 짚어도 무방하지만 동작의 순서를 정할 때에는 오른손이 먼저 땅을 짚어야 합니다. 이것은 옛날 인도의 관습으로, 오른손을 왼손보다 귀히 여기기 때문에 오른손을 먼저 부처님전에 놓이도록 하는 것이라는 설도 있고 또 스님들이 절을 하실 때에 입고 계신 가사가 앞으로 내려오는 것을 왼손으로 받치기 위해서 왼손이 늦게 땅을 짚는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3. 왼손과 이마를 땅에 대는 동작 앞의 동작에서 이미 오체투지의 큰 절을 할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으므로 이 동작에서는 허리를 더 깊이 숙이면서 가슴 근처에 남아 있는 왼손을 오른손과 적당한 간격으로 나란히 하여 왼쪽 무릎 앞에 놓고 머리를 그대로 숙여서 이마를 두 손 사이의 땅에 닿도록 합니다. 이 때 몸을 숙이는 반동에 의하여 둔부가 발에서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 자세에서 완전히 오체투지가 어루어져야 합니다. 땅에 닿은 이마의 양편에 두 손이 가지런히 놓이는데 아직까지는 손바닥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두 팔꿈치가 자연스럽게 땅에 닿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체의 나머지 부분인 두 무릎은 이미 처음 동작에서 꿇은 상태이므로 몸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은 상태가 됩니다. 이 때 둔부가 발에서 떨어져 몸의 뒷부분이 높이 올라가지 않도록 자세를 낮추어야 합니다. 4. 부처님 발을 받드는 동작 이미 위의 동작에서 오체투지가 이루어졌습니다. 다음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도록 젖히는 자세를 취하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여 정확한 동작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고 상대방을 공경한다는 마음 자세를 오체투지로 표시합니다. 그리고 이 예법은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완전히 오체투지가 이루어진 후에 두 손을 뒤집어 약간 들어올려서 부처님 발을 받드는 것과 같은 동작을 취하는 것입니다. 바로 앞의 오체투지의 자세에서 땅을 짚고 있는 두 손을 뒤집어서 손바닥이 위를 향하도록 한 다음, 귀 높이까지 약간 들어올립니다. 이 때에는 손바닥이 곧게 펴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여 손의 모양이 흩어지지 않게 들어올려야 하며 왼손과 오른손이 엇갈려서 올라가서도 안 됩니다. 즉, 위를 향한 두 손바닥에 부처님의 발이 놓여지고 조심스럽게 들어올린다는 생각을 가져야 자세가 흩어지지 않습니다. 이 때 팔굽은 무릎끝 앞에 닿게 하고 두 무릎이 닿는 것이 불편한 경우에는 두 무릎 사이를 한 뼘 이내로 떨어지게 하며 손과 손목을 똑바로 폅니다. 오체투지의 큰 절을 끝내고 일어서는 동작은 절하는 순서의 정반대의 순서에 따라 행해집니다. 일어서는 순서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체투지의 자세에서 부처님 발을 받드는 모양으로 귀높이에서 위로 향해있는 두 손바닥을 다시 뒤집어서 땅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 첫번째 동작입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땅을 밀면서 상체를 45°정도 일으키고 왼손을 가슴으로 가져오는 것이 다음 동작인데, 일어서는 동작은 오체투지가 이루어진 후에 다만 이를 거두어 들이는 동작이므로 자세가 흩어지지 않게 유의하면서 간단한 동작만 주의를 기울여 취하면 됩니다. 세번째 동작으로는 상체를 지면과 수직이 되도록 완전히 일으켜 세우며 합장을 하되, 이 때 발의 자세를 올바로 취해야 합니다. 즉, 몸을 지면과 수직이 되도록 세우기에 앞서 발등이 땅에 닿아 ‘X’자로 교차된 발을 다시 풀어서 나란히 하여 발 끝이 땅을 짚고 있도록 약간 몸을 숙여야 합니다. 끝으로 몸의 반동을 이용하여 두 발로 동시에 땅을 밀면서 일어서는 것이 마지막 동작입니다.
법을 보는 자야말로 부처님을 뵙는 것이며 예경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실상례라 하고, 법의 이치를 깨달아 부처님과 같은 평등성지에 머무는 것을 무상례라고 합니다. 그러나 법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부처님의 지혜와 덕성과 뜨거운 자비, 가없는 서원력을 우러러 합장하고 일심이 되어 몸을 굽혀 지극한 존경의 뜻을 나투게 되는데 이것이 공경례입니다. 이러한 공경례의 표현으로 3배 또는 108배 그리고 천 배, 삼천 배의 절을 올리며 정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몸으로 아무리 무수히 절을 한다고 하여도 부처님께 대한 지극한 예경의 뜻을 다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마지막 끝에 이를 표시하는 고두를 하게 되는데 유원반배(唯願半拜)라고도 하며 무수히 예경하고픈 심정은 간절하나 절을 이것으로 마치게 되는 아쉬움을 표하는 예법입니다. 고두배는 절을 마치고 일어서기 전에 합니다. 그러므로 삼 배를 할 경우에는 세번째 절, 그리고 108배를 할 경우에는 108번째 절을 마친 후에 합니다. 만일 일 배밖에 할 수 없는 피치 못할 경우가 생길 때에는 일 배후 곧 고두배를 하면 됩니다. 마지막 큰 절을 완료하여 몸이 오체투지의 상태가 되고 두 손바닥이 부처님을 받들기 위하여 위로 향한 자세에서 고두를 하기 위해서는 일어설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손바닥이 땅을 향하도록 한 다음 엎드린 자세에서 팔굽을 들지 말고 머리와 어깨만을 들었다가 다시 이마를 땅에 대는데, 머리를 들었을 때에 시선을 그대로 땅에 두어야 합니다. 고두의 방법은 머리와 어깨만을 잠깐 들었다 다시 이마를 땅에 대는 단순한 동작으로 할 수도 있고 머리와 어깨를 약간 들고 팔굽을 땅에서 떼지 않은 채 그대로 손으로 합장 자세를 취하였다가 손을 풀고 다시 두 손과 이마를 땅에 대는 방법도 있습니다. |
발우공양 예법 |
1)발우 발우란 ‘양에 알맞은 그릇’이란 뜻으로 전통적으로 스님들께서 사용해 온 식기입니다. 2)발우 공양의 정신 3)공양할 때의 몸가짐 4)공양할 때 주의할 점 5)공양 준비할 때 주의할 점 6)준비물 전체 : 공양용구 준비 / 청수 주전자, 밥통, 주걱, 국통, 국자, 찬상(네 종류 정도), 수저, 청수통, 걸레. 7)발우 공양하는 법 (청수, 밥, 반찬 순서) ① 청수는 밥그릇에 받아 다른 그릇을 헹구고 청수 그릇에 담아둡니다. 오관게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가. 죽비 세 번 : 오관게를 외우고 공양을 합니다. (또는 공양발원문이나 공양게송 합송) ① 발우는 큰 그릇부터 씻습니다. 죽비 한 번 : 청수통을 돌리는데 청수통은 맨 아랫사람에서부터 윗 사람에게로 거둡니다. 가. 죽비 한 번 : 합장하고 공양 발원문(또는 공양 게송)을 합송합니다. 8) 발우 공양 용구 |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상식 및 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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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의, 삼보, 삼보사찰, 불교의4대성지, 불교기 |
1) 삼귀의(三歸依) |
사찰의 전각에 대하여 |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사찰들에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전각들이 있는데, 거기에는 각각의 이름들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름들은 아무렇게나 지어진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그 건물에
모셔져 있는 불.보살들에 따른 것으로서, 그 건물의 이름을 보면 우리들은 그 곳에 모셔진 분이
어느 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보살들의 경우에도 관세음보살이 본존일 때는 관음전, 광명전, 대비전, 원통전 등으로 부르는데,
특히 명부전은 지장보살과 함께 명부의 시왕을 함께 모신 곳이므로 시왕전이라고도 합니다. 이밖에
사찰의 주요 전각들에는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각, 산신령을 모신 산신각, 용왕을 모신 용신각,
칠성님을 모신 칠성각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토속신앙이 불교에 포섭되어 지어진 건물들입니다.
한편 재미있는 것은 전각의 이름에 따라 교리상 그 사찰이 본래 어느 종파의 소속이었나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화엄종에서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을 광명전이라 했고 천태종에서는 원통전이라
했던 것이 그 예입니다. |
사물 : 절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네가지 불구(범종, 법고, 운판, 목탁) |
사물(四物)이란 범종(梵鍾), 법고(法鼓), 운판(雲版) 그리고 목탁이라고도 하는 목어(木魚)를
말합니다. |
부처님의 생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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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래의상(兜率來義相) : 부처님께서 도솔천에서 호명보살로 계시다 마야부인의 태에 들다. | |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약2,600여년 전, 기원전 624년에 지금 네팔의 타라이 지방인 카필라(Kapila)국 사캬(Sakya, 釋迦)족의 정반왕과 왕비 마야부인 사이에 태어났다. 성은 고타마(Gotama, 최상의 소라는 뜻)였고, 출가하기 전 이름은 싯달타(Siddh rtha,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였다. 고타마 싯달타가 출가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자 사람들은 그를 석가모니(Sakyamuni) 즉,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고 불렀다. 1)도솔래의상(兜率來義相)-도솔천에서 내려오시다. '나는 여기에 깨달음의 씨앗을 뿌려야겠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이렇게 생각한 수메다는 부처님께 공양물을 준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도시에는 왕의 지시로 모든
공양물이 부처님께 바쳐져 하나도 남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수메다는 아름다운 꽃 일곱 송이를
들고 가는 여인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가서 그 꽃을 팔 것을 간청했다. 그녀는 팔지 않을 마음으로
이 꽃 한 송이는 은 1백 냥이며, 또한 나와 결혼을 약속한다면 이 꽃을 팔겠다고 했다. 수메다는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결국 그 꽃을 부처님께 바칠 숭고한 마음으로 그녀의 조건을 받아들여 다섯 송이를
샀다. 그러자 그녀는 수행자의 진지한 마음에 감탄하여 나머지 두 송이 꽃마저 부처님께 공양하라고
주었다. 수메다는 그 꽃을 연등부처님께 바쳤다. 연등 부처님께서는 뭇 중생을 가르치고, 젊은 구도자
수메다에게 기쁨 "아! 나도 언젠가는 지금의 세존(世尊)이신 연등 부처님같이 완전한 인격자가 되기를… 이 광경을 본 연등 부처님은 제자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견디기 힘든 고행을 하고 있는 이 수행자를 보라. 그는 지금으로부터 무량한 겁이 지난 후 세상에 출현하여 부처님이 될 것이니라." 견줄 사람 없는 대성인의 말씀을 듣고 천인과 인간들은 크게 기뻐하며 외쳤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당신이 10바라밀을 행하심은 제석천이나 마왕, 범천, 전륜왕의 영광을 위해 이룬 것이 아니옵고, 오직 세상의 중생을 제도하고자 일체지를 추구함으로써 이루신 것이나이다. 스승이시여, 바야흐로 부처님이 도기 위한 때가 왔나이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부처님이 될 때이나이다." 호명보살은 천인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이 태어날 때와 지방, 가계와 생모에
대해 살핀 뒤 석가족의 마을에 있는 마야부인의 태중에 드시리라 결정하셨다. 출처 : <불교입문> 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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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 부처님께서 카필라국 룸비니에서 거룩한 탄생을 하시다. | |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세상에 태어나시다.
카필라국은 히말라야 남쪽 기슭의 초목 지대에 자리한 조그만 왕국으로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업국이었다.
이웃에는 코살라와 마가다와 같은 큰 나라들이 있어 위협을 받고 있었으나 비교적 풍요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여기서 태자가 외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은 종종 독불장군이라는 식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본래 의미는 태자가 도솔천에서 내려온 일생보처보살로서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가장 훌륭한
인간이라는 의미이며 동시에 깨달음을 구하는 모든 중생 하나하나가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지혜의 외침,
생명 존엄의 선언이다. 출처 : <불교입문> 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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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 궁궐 밖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괴로움의 실상을 느끼다. | |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괴로움의 실상을 느끼다
싯달타 태자는 왕궁의 풍요 속에서 총명하고 건강하게 자랐다. 7세가 되자 태자는 학문과 무예를
익히기 시작하여 곧 모든 학문과 무에를 통달하여 더 이상 그를 가르칠 만한 스승이 없게 되었다.
아버지 정반왕은 그를 극진히 생각하여 계절에 따라 생활하도록 궁전을 세 곳(三時殿)이나 지어주는
등 온갖 호사 속에 성장하게 하였다. 그러나 도성 출입만은 언제나 금지시켰다. 태자가 현실세계의
고통을 모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농부는 낡은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소는 농부의 채찍을 맞으며 힘들게 밭갈이를 하고, 쟁기에 의해 흙 밖으로 나온 벌레는 새들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이처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고 사는 것이 과연 이 세상의 올바른 질서인가?" 약육강식의 세상을 직접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인간은 태어났다가 결국은 늙고 병들어 죽고 마는 것. 어머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버님도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이 세상에 태어난 자가 필연적으로 겪는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 아아, 인생은 허무하고 괴로운 것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수렁이 앞에 막아 서 있다." 생명을 가지 어떤 것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번민하던 싯달타 태자는 다음 날 북문으로 나갔다가 출가 수행자를 발견했다. 수행자의 얼굴은 여유 있고 평화스럽게 보였다. 그의 눈에는 깊은 사색으로 지혜가 담겨 있었다. 싯달타 태자는 수레를 멈추었다. "그대는 누구시오. 무엇 하는 사람이요. 나는 당신처럼 평화스러운 사람을 본 적이 없소." "예. 저는 출가 사문입니다. 사문이란 가정을 떠나 세상의 잡된 일을 모두 잊고. 오직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진리를 찾아서 수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왕궁의 영화와 권세, 향락과 사치 그리고 어떤 학문과 종교에서도 생로병사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했던 태자는 출가 수행자에게서 그 길을 찾았던 것이다. 이것을 사문유관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환희에 찬 태자는 그 후부터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사유를 하기 시작하였다. 출처 : <불교입문> 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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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 궁궐담을 넘어 수행자의 삶을 찾아 출가하다. | |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성을 넘어 출가하시다.
수행자를 만난 후 태자의 인생관은 점차 변모되었고, 마침내 부왕에게 출가하여 수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나는 하늘에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많은 중생이 삶과 죽음의 고통 속에 있지 아니한가. 왕궁이 멀어지자 태자는 말과 마부를 돌려보내고 값비싼 옷을 벗어 사냥꾼의 낡은 옷과 바꾸어 입고
스스로 머리와 수염을 깎은 위 당시의 유명한 수행자들을 찾아 외롭고 힘든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
왕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아내 야쇼다라와 아들 라훌라마저 뒤로 한 채 깨달음의 길로 나아간
이 날이 태자 나이 29세 되던 해 음력 2월 8일이었다. 출처 : <불교입문> 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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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 수 없이 많은 고행을 버리고 중도를 향한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시다. | |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깨달음을 향해 정진하시다.
여러 스승에게서 배웠으나, 곧 스승의 경지에 도달하여 더 이상 그를 가르칠 이가 없었을 때, 수행자 고타마는 당시 다른 수행자들이 그러했듯이 고행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고행은 실로 다른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치열한 것이었다. 부처님의 일생을 찬탄한 《불소행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나는 실로 고행자 중에 최상의 고행자였다. 남들이 바치는 음식도 받지 않았으며 풀과 떨어진 과일만
주워 먹었다. 나는 무덤 사이에서 시체와 해골고 함께 지냈다. 그대 목동들은 내게 와서 침을 뱉고
오줌을 누기도 했으며 귀에 나무 꼬챙이를 쑤셔 넣기도 했다. 내 목에는 여러 해 동안 때가 끼어
저절로 살가죽을 이루었으며 머리는 길어 새들이 찾아들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고행을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과거의 어떤 수행자도,
미래의 어떤 수행자도 자신과 같은 고행을 할 수 없을 것이라 하실 만큼 고행에 몰입하였다. 이 때
정반왕은 아들을 염려하여 다섯 사람을 보냈는데 이들도 고타마와 함께 수행자가 되어 고행을 하였다. 출처 : <불교입문> 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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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마왕으로 부터 굴복을 받으시고 마침내 성불하시니... | |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마왕을 항복시키시다.
수행자 고타마는 고행을 포기한 뒤 수자타가 올리는 우유죽 공양을 받아 기운을 회복하고 목동 스바스티카(吉祥)가 바친 부드럽고 향기로운 풀을 보리수 아래에 깔고 그 위에 앉아서 굳은 다짐을 하였다. "내 여기서 위없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침내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라." 《수행본기경》 금강석보다 굳센 의지 때문인지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깨달으셨고, 깨달으신 그 자리는 훗날 금강보좌(金剛寶座)라
부른다. "너희들의 몸은 비록 아름답지만 모든 악이 가득해 견고하지 않고 부정이 흘러 생로병사가 항상 따른다. 손에는 팔지, 귀에는 귀고리를 흔들면서 교태 섞인 웃음으로 탐욕의 화살을 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대들의 욕망을 독약으로 안다. 칼날에 발린 꿀은 혀를 상하게 하고 사악한 욕정은 독사의 머리와 같으니 내 이미 모든 유혹을 뛰어넘었다. 너희들은 모두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물러가거라." 이렇게 말하자 마왕의 세 딸들은 모두 추한 노파로 변해 탄식하며 물러갔다. 그러나 마왕은 화가
나서 수행자 고타마를 향해 태풍, 폭우를 보내고 창칼, 불화살, 돌을 던지며 악귀를 동원하여 수행을
방해했다. 그러나 수행자 앞에서 그것은 모두 꽃으로 변하여 흩날릴 뿐이었다. 유혹과 폭력으로도 수행을
막지 못한 마왕은 직접 고타마 앞에 나타나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회유하자 수행자 고타마는 마왕을 향해 다음과 같은 준엄한 사자후를 한다. 게으른 자의 무리여, 사악한 자여, 그대가 여기에 온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수행자 고타마는 머나먼 과거 세부터 한량없는 세월동안 선근공덕을 쌓아왔기에 악마의 군대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마왕 파순은 그것을 누가 증명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외쳤다. 수행자 고타마는 오른손을 내밀어 땅을 가리키며 '이 땅은 능히 일체의 물건을 내어 차별이
없는 평등한 행을 하도다. 원컨대 지금 진실을 말하라'고 했다. 이때 땅을 지키고 있던 지신(地神)이,
'가장 큰 대장부시여, 내 당신을 증명하리다. 제가 아나이다'라고 외치자 대지와 삼천대천 세계의
국토는 두루 크게 진동하였다. 마왕은 이 우렁찬 소리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았다. "세상에선 무기를 써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나 결국 이 세 가지 욕망을 극복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육체적, 정신적, 제도적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마왕의 온갖 유혹과 물리적 위험, 그리고 회유를 극복하는 이 장면은 우리가 가져야
할 불퇴전의 수행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 잘 말해주고 있다. 출처 : <불교입문> 조계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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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 중생의 구원을 위해 감로의 법문을 내리시고 몸소 평생을 전법하시니... | |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진리를 설하시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후 한동안 보리수 아래 머물며 삼매에 들어 있었다. 삼매에 든 부처님은 깨달음의 내용이 매우 심오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며 설하기를 주저하셨다. 이 때 최고의 신인 범천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중생을 위해 설법해 주실 것을 세 번이나 간청하였다고 한다. 당시 부처님의 심정은 이렇게 전해진다. "고생 끝에 겨우 얻은 이것을 탐욕에 허덕이는 중생에게 진리를 깨우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감로의 문은 열렸다. 전도를 결심한 부처님은 깨달음의 진리를 알 수 있는 사람으로 한 때 스승이었던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를 생각하였지만, 이미 그들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아시고, 전에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를 찾아 녹야원으로 갔다. "수행자들아,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는 길이 있느니라. 그 하나는 육체의 요구대로 자신을 내맡기는 쾌락의 길이고, 또 하나는 육체를 너무 지나치게 괴롭히는 고행의 길이다. 수행자는 이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배워야 한다. 나는 바로 중도를 깨달았으며, 중도에 의하여 생로병사의 온갖 괴로움을 버리고 평화로운 해탈의 기쁨을 얻었느니라." 첫 설법은 이렇게 중도와 사성제 등을 설하여 연기의 이치를 가르치셨다. 이것을 최초의 설법인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한다. 설법과 대화, 토론을 통해 다섯 수행자 가운데 교진여가 맨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되고 곧 나머지 수행자 모두 그 가르침을 이해하여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이 부처님의 최초의 제자로 비구(比丘)의 시초이다. "비구들이여,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고 안락을 위하여,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이것을 전도(傳道)선언이라 한다. 출처 : <불교입문> 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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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 지 45년, 열반에 드시어 법신으로 상주하시다. | |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법신으로 상주하시다.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 지 45년, 그 동안 부처님께서는 항상 중생 속에서 동고동락하셨다. 그러나 80세가 되신 해에 부처님은 아난 종자에게 '나는 이미 모든 법을 설했고 내게 비밀은 없으며 육신은 이제 가죽끈에 매여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낡은 수레와 같다'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마지막 설법을 하였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 의지하라. 이것이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열반유훈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라."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 길에서 가시니 이 날이 음력 2월 15일 열반절이다. 열반이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에서 온 말로 '불어서 끈다'는 뜻이다. 무엇을 불어서 끄는 것인가? 바로
욕망과 번뇌의 불을 끄는 것이다. 지혜 제일이라 불리는 사리불은, 열반이란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을 영원히 없애 모든 번뇌를 소멸시킨 것이며, 열반에 이르는 방법은 바로 팔정도(八正道)라
하였다.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성도를 이루신 그 순간부터 이미 열반에 드신 것이다. 세상에 인연으로
생긴 것은 반드시 소멸하는 데 부처님께서는 이 무상의 진리를 스스로 따랐다. 원래 부처님은 업의
굴레에 매인 몸이 아니다. 깨달으신 부처님은 영원하여 태어난다거나 죽은 일이 없다. 부처님께서는
'나의 육신은 설사 멸하더라도 제자들이 법과 계율을 잘 지키고 행하면 나의 법신(法身)은 영원히
상주하여 멸하지 않으리라'말씀하셨다. 출처 : <불교입문> 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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