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보물]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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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6-06-28 10:53본문
[인천문화유산실록 40]
수화승 수연(守衍)이 전등사에 다시 남긴 명부전의 대작
조선 후기 명부전 도상 체계를 온전히 보존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江華 傳燈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 명부전(冥府殿)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목조지장불상과 권속(眷屬)들이다.
지장보살은 명부(冥府, 불교에서 죽은 뒤에 가는 세계)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며, 시왕(十王)은 저승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이다.
2012년 12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대웅보전의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함께 전등사를 대표하는 조선 시대 불교 조각이다.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장군 둘 빼고 한 화면에 담았다.
조성 배경: 13년 만에 돌아온 조각승
이 불상들의 내력은 복장(腹藏, 불상을 만들 때 그 안에 금은보화나 서책 등을 넣는 것)에서 수습된 조성발원문에서 알 수 있다.
복장유물은 지장보살상·무독귀왕상·도명존자상과 제1진광대왕상·제3송제대왕상·제4오관대왕상에서 수습되었다. 이 가운데 지장보살·도명존자·송제대왕·오관대왕상에서 이들의 조성과 관련된 발원문이 함께 나왔다.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중 지장보살상에 복장되었던 전등사시왕조상회향발원문]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cdn.incheontoday.com/news/photo/202606/320077_325350_5936.jpg)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중 지장보살상에 복장되었던 전등사시왕조상회향발원문]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원문에 따르면 1636년(인조 14) 수화승 수연(守衍)을 비롯한 12명의 화원이 함께 조성하였다. 수연은 1623년(인조 1) 대웅보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을 만든 바로 그 수화승이다. 한 사찰이 13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조각승에게 두 차례 대규모 불사를 맡긴 것으로, 한 작가의 조각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한자리에서 살필 수 있는 드문 사례다.
조성에 참여한 화원은 수연을 비롯하여 영철(靈哲)·밀영(密英)·의엄(義嚴)·정원(淨元)·성민(性敏)·법란(法蘭)·사신(思信)·선행(善行)·신관(信寬)·신수(信修)·응신(應信) 등이다.
수연은 17세기 전반 충청도·전라도·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한 조각승으로, 서천 봉서사 목조삼존불좌상(1619), 익산 숭림사 영원전 목조지장보살좌상(1634, 원 봉안처 옥구 보천사) 등을 남겼다. 그의 조각 경향은 영철(靈哲)을 거쳐 17세기 중·후반의 운혜(雲惠), 경림(敬林)으로 이어지며 조선 후기 불교 조각의 한 계보를 이루었다.
구성과 배치
전등사 명부전에는 주존 지장보살을 비롯하여 도명존자(道明尊者)·무독귀왕(無毒鬼王), 시왕 10구, 그리고 귀왕(鬼王)·판관(判官)·사자(使者)·동자(童子)·장군(將軍) 등 지장보살의 권속이 'ㄇ'자 형태의 불단 위에 봉안되어 있다. 입구를 지키는 장군상은 인왕(仁王)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총 31구가 한자리에 갖추어져 조선 후기 명부전의 도상 구성을 보여 준다.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불단 한가운데에는 주존 지장보살좌상이 앉아 있다. 두건을 쓰지 않은 민머리로, 이마가 넓고 턱으로 갈수록 갸름해지는 얼굴에 깊게 파인 인중과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특징적이다. 이중착의법(二重着衣法, 대의와 내의를 겹쳐 있는 옷차림)으로 대의(大衣)를 걸쳤으며, 드러난 가슴 아래에는 군의(裙衣, 치마 모양의 아래옷)의 윗부분을 연꽃잎 모양으로 가지런히 접어 표현하였다.
지장보살의 향우측에는 검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하고 오른손에 육환장(六環杖)을 쥔 도명존자가, 향좌측에는 두 손을 흰 천으로 공손히 감싸 보함(寶函)을 받든 무독귀왕이 입상으로 모셔져 삼존을 이룬다.
도명존자는 사후 세계를 다녀와 그 광경을 세상에 알렸다는 젊은 승려이고, 무독귀왕은 사람의 악한 마음을 없애 준다는 귀신의 왕이다.

제5 염라대왕(閻羅大王) 머리에 책을 이고 있다. 《금강경》이다. 바라볼 때, 도명존자의 오른쪽 세 번째 자리에 있다. 다리 사이로 길게 늘어진 것이 광다회이다.
삼존 좌우로는 시왕이 늘어선다. 우리가 바라볼 때, 오른쪽에 제1·3·5·7·9왕이 있고, 왼쪽에 제2·4·6·8·10왕이 있다.
시왕상은 양관(梁冠, 관리들이 임금을 모시고 조회에 참석할 때 쓰는 관) 형태의 관모를 쓰고 포(袍, 소매가 넓은 겉옷)·치마·허리띠·광다회(廣多繪, 넓은 띠)를 갖추었으며, 허리띠와 광다회에는 화려한 매듭 장식이 있다.
여덟 구는 의자에 앉았고, 두 구는 서 있다. 대부분 중년의 얼굴에 양손으로 홀(笏, 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 쥐던 물건)을 쥐었다. 관모 정면에는 꽃 장식을 주된 모티프로 삼고 화염 무늬와 뿔 장식 등을 곁들였다.
시왕 옆으로 귀왕·판관·사자·동자와 장군(인왕)상이 자리한다. 이 권속들은 조성 당시의 수효가 그대로 전하지는 않는다. 시왕과 같이 양관을 쓴 귀왕은 현재 한 구만 남았고, 검은 복두(幞頭)를 쓴 판관은 세 구가 있다. 그 가운데 한 구는 양손으로 홀을 쥐었고, 나머지는 한 손을 소매에 넣은 채 광다회를 쥐거나 한 손을 내민 자세를 취하였다.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뒤에 있는 분이 귀왕이다. 시왕처럼 홀을 들고 있는 것도 특이한 모습이다. 왼쪽 끝에 서 있는 상이 사자인데 두건이 아니라 복두를 쓰고 있다는 상이다. 그 앞에 있는 동자 크기의 관료 모습 조각상의 정체는 알 수 없다.
사자상은 현재 한 구뿐인데, 조선 후기 사자상이 대개 두건을 쓴 것과 달리 판관처럼 검은 복두를 쓴 점이 특이하다. 이는 수연이 전등사보다 2년 앞서 만든 1634년(인조 12) 옥구 보천사 시왕상(현 익산 숭림사 영원전 봉안)에서도 확인되는 특징으로, 수연 계보의 조각승들이 복두를 쓴 사자상을 조성한 것으로 본다고 〈국보 보물 지정보고서〉(2012)와 문화유산 안내문에 기록되어 있다.

명부전 향우측 모습. 왼쪽 끝에 앉아 있는 상은 시왕 중 제9대 도시대왕(都市大王)이고, 그 옆으로 판관 셋이 서 있다. 그 사이 노란 네모 안의 상이 사자로 보인다. 명부전에 실제로는 사자가 둘 있다.
그런데 향우측 권속 중에 사자로 보이는 상이 한 구 더 있다. 옷차람이 시왕, 판관과 전혀 다르며, 앞에서 언급한 사자와 똑같은 옷차림이다. 명부전의 권속은 여러 시대에 걸쳐 새로 만들어 넣기도 해서 본래 모습에서 다소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가치
이 상들은 같은 수화승이 13년 앞서 만든 대웅전 삼불좌상에 비해 한층 부드럽고 단정한 형태로 변모하였다. 지장보살상의 자비로움, 시왕상의 단엄함, 동자상의 쾌활함이 어우러진 17세기 명부 조각의 사례로 평가된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제작 시기가 밝혀진 지장시왕상 가운데 이른 시기에 속하며, 명확한 조성 연대와 뚜렷한 화원 계보를 갖추어 17세기 전반 불교 조각사와 조각승 유파 연구의 기준 자료가 된다.
지정사항
이름: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江華 傳燈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분류: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불상
수량: 31구
지정일: 2012.12.27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길상면, 전등사)
시대: 1636년(인조 14)
소유자 및 관리자: 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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