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강화 전등사·서운문도회, ‘서운 스님 30주기 추모 행사’ 봉행 - 법보신문 2025.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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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31회 작성일 25-11-10 14:13본문
11월 8일 전등사서…문집 봉정식·역사문화교육관 준공기원법회 등
추모 세미나도 열려…총무원장 진우 스님, 준공기원법회 참석 예정
문집에 스님이 집필한 ‘처무규정’ 원본 수록…세미나서 의미 조명

전등사는 10월 2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서운 대종사 30주기 추모 행사’ 계획을 발표했다.
조계종 전등사(주지 여암 스님)와 이목당서운문도회가 11월 8일 인천 강화 전등사 경내에서 ‘서운 대종사 30주기 추모 행사’를 봉행한다. 이번 행사는 서운 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돌아보고 뜻을 기리기 위해 열린다.
10월 28일에는 30주기 행사 관련 기자간담회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내 두레에서 열렸다. 전등사는 추모 행사로 △추모 다례와 문집 봉정식 △전등사 역사문화교육관 준공기원법회 △추모 세미나 등을 봉행할 예정이다. 이 중 준공기원법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에 봉정되는 문집에는 서운 스님 관련 자료와 증언들이 담긴다. 특히 그동안 제목으로만 전해지던 ‘처무규정’ 원본이 수록되는데, 세미나에서는 문헌의 의미를 종단적 차원에서 조명한다. 또 법정 스님의 글과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알려졌던 서운 스님의 봉은사 토지 매각 반대 입장은 스님이 직접 작성한 ‘봉은사 임야 및 토지 매각에 대한 역사적 증언’과 ‘주간 한국’ 기사 원본을 통해 공개된다. 아울러 11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서운 스님 사진전을 연다. 사진전에서는 스님의 생전 행적과 유품이 전시된다.
10월 28일에는 30주기 행사 관련 기자간담회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내 두레에서 열렸다. 전등사는 추모 행사로 △추모 다례와 문집 봉정식 △전등사 역사문화교육관 준공기원법회 △추모 세미나 등을 봉행할 예정이다. 이 중 준공기원법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에 봉정되는 문집에는 서운 스님 관련 자료와 증언들이 담긴다. 특히 그동안 제목으로만 전해지던 ‘처무규정’ 원본이 수록되는데, 세미나에서는 문헌의 의미를 종단적 차원에서 조명한다. 또 법정 스님의 글과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알려졌던 서운 스님의 봉은사 토지 매각 반대 입장은 스님이 직접 작성한 ‘봉은사 임야 및 토지 매각에 대한 역사적 증언’과 ‘주간 한국’ 기사 원본을 통해 공개된다. 아울러 11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서운 스님 사진전을 연다. 사진전에서는 스님의 생전 행적과 유품이 전시된다.
조계종 전등사(주지 여암 스님)와 이목당서운문도회가 11월 8일 인천 강화 전등사 경내에서 ‘서운 대종사 30주기 추모 행사’를 봉행한다. 이번 행사는 서운 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돌아보고 뜻을 기리기 위해 열린다.
10월 28일에는 30주기 행사 관련 기자간담회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내 두레에서 열렸다. 전등사는 추모 행사로 △추모 다례와 문집 봉정식 △전등사 역사문화교육관 준공기원법회 △추모 세미나 등을 봉행할 예정이다. 이 중 준공기원법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에 봉정되는 문집에는 서운 스님 관련 자료와 증언들이 담긴다. 특히 그동안 제목으로만 전해지던 ‘처무규정’ 원본이 수록되는데, 세미나에서는 문헌의 의미를 종단적 차원에서 조명한다. 또 법정 스님의 글과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알려졌던 서운 스님의 봉은사 토지 매각 반대 입장은 스님이 직접 작성한 ‘봉은사 임야 및 토지 매각에 대한 역사적 증언’과 ‘주간 한국’ 기사 원본을 통해 공개된다. 아울러 11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서운 스님 사진전을 연다. 사진전에서는 스님의 생전 행적과 유품이 전시된다.
10월 28일에는 30주기 행사 관련 기자간담회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내 두레에서 열렸다. 전등사는 추모 행사로 △추모 다례와 문집 봉정식 △전등사 역사문화교육관 준공기원법회 △추모 세미나 등을 봉행할 예정이다. 이 중 준공기원법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에 봉정되는 문집에는 서운 스님 관련 자료와 증언들이 담긴다. 특히 그동안 제목으로만 전해지던 ‘처무규정’ 원본이 수록되는데, 세미나에서는 문헌의 의미를 종단적 차원에서 조명한다. 또 법정 스님의 글과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알려졌던 서운 스님의 봉은사 토지 매각 반대 입장은 스님이 직접 작성한 ‘봉은사 임야 및 토지 매각에 대한 역사적 증언’과 ‘주간 한국’ 기사 원본을 통해 공개된다. 아울러 11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서운 스님 사진전을 연다. 사진전에서는 스님의 생전 행적과 유품이 전시된다.

전등사 주지 여암 스님은 “이번 30주기 추모행사에서 서운 스님의 주요 활동에 대해 새롭게 발굴한 자료와 증언들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등사 주지 여암 스님은 “이번 30주기 추모행사에서 서운 스님의 주요 활동에 대해 새롭게 발굴한 자료와 증언들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그동안 이두스님의 글에서 제목만 전해지던 ‘처무규정’의 원본을 찾아 문집에 싣고, 그 종단적 의미를 세미나 통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또 서운 스님이 직접 쓴 ‘봉은사 임야 및 토지 매각에 대한 역사적 증언’ 등 3~4종의 문건과 당시 서운 스님을 인터뷰했던 주간 한국 기사 원본을 통해 봉은사 토지 매각 과정의 이면을 생생히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903년생인 서운 스님은 불교정화운동과 통합종단 출범에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은 보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부터 불교청년운동에 참여했으며, 만해 한용운 스님과 석전 박한영으로부터 불교와 독립정신을 배웠다. 1932년에는 금오, 전강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선기를 인가받았고, 1950년 제산 화상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1954년 효봉, 동산 스님의 부름을 받아 불교정화운동에 나섰고, 1960년 통합종단 출범 전 총무원장으로 선출되며 비구승단 정화를 주도했다. 1962년에는 통합종단 총무부장으로 선출됐지만, 초대 총무원장 석진 스님이 비구 측 중심의 종단 운영에 반발하며 물러나자 총무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1968년 봉은사 주지 재임 당시에는 종단의 봉은사 토지 매각 방침에 강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1980년 동화사 주지를 끝으로 종무 행정에서 물러난 스님은 그해 전등사 조실로 추대됐고, 1982년에는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됐다. 1983년 속초 신흥사 폭력사태 이후 구성된 비상종단운영회의에서 원로회의는 서운 스님을 위원장 겸 총무원장으로 추대했다. 이에 당시 총무원장 진경 스님이 반발하며 인수인계를 거부하자, 서운 스님은 그해 12월 총무원을 접수하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지만, 종단 안팎의 비판 여론으로 인해 업무 시작 27일 만인 1984년 1월 17일 총무원장직에서 물러났다.
스님은 총무원장에서 사퇴한 뒤에도 비상종단 상임위원장을 맡았는데, 비상종단은 1984년 8월 해체됐다.
이후 서운 스님은 전등사 조실로서 후학들을 이끌었고, 1995년 11월 15일 세수 93세, 법랍 45세로 입적했다.
한편 스님은 일제강점기 행정고시에 합격해 대구전매서장까지 역임했다. 스님은 이 경험을 살려 정화운동과 통합종단 출범에 기여했다. 또 처무규정을 제작해 당시 수행에만 전념했던 비구 후학들에게 행정의 기본과 회계를 교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진호 기자 kpio99@beopbo.com
[1799호 / 2025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1903년생인 서운 스님은 불교정화운동과 통합종단 출범에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은 보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부터 불교청년운동에 참여했으며, 만해 한용운 스님과 석전 박한영으로부터 불교와 독립정신을 배웠다. 1932년에는 금오, 전강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선기를 인가받았고, 1950년 제산 화상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1954년 효봉, 동산 스님의 부름을 받아 불교정화운동에 나섰고, 1960년 통합종단 출범 전 총무원장으로 선출되며 비구승단 정화를 주도했다. 1962년에는 통합종단 총무부장으로 선출됐지만, 초대 총무원장 석진 스님이 비구 측 중심의 종단 운영에 반발하며 물러나자 총무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1968년 봉은사 주지 재임 당시에는 종단의 봉은사 토지 매각 방침에 강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1980년 동화사 주지를 끝으로 종무 행정에서 물러난 스님은 그해 전등사 조실로 추대됐고, 1982년에는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됐다. 1983년 속초 신흥사 폭력사태 이후 구성된 비상종단운영회의에서 원로회의는 서운 스님을 위원장 겸 총무원장으로 추대했다. 이에 당시 총무원장 진경 스님이 반발하며 인수인계를 거부하자, 서운 스님은 그해 12월 총무원을 접수하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지만, 종단 안팎의 비판 여론으로 인해 업무 시작 27일 만인 1984년 1월 17일 총무원장직에서 물러났다.
스님은 총무원장에서 사퇴한 뒤에도 비상종단 상임위원장을 맡았는데, 비상종단은 1984년 8월 해체됐다.
이후 서운 스님은 전등사 조실로서 후학들을 이끌었고, 1995년 11월 15일 세수 93세, 법랍 45세로 입적했다.
한편 스님은 일제강점기 행정고시에 합격해 대구전매서장까지 역임했다. 스님은 이 경험을 살려 정화운동과 통합종단 출범에 기여했다. 또 처무규정을 제작해 당시 수행에만 전념했던 비구 후학들에게 행정의 기본과 회계를 교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진호 기자 kpio99@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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