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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강화도 전등사에서 보물찾기,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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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6-06-2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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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하늘이 흐리더니 결국 비가 내렸다.

"비 오는 날 가기 좋은 곳 어디 없을까요?"

집에만 있기 아쉬워 넌지시 던진 한마디에 남편이 강화도 전등사행을 제안했다. 아이들 어릴 때 가본 이후로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손주의 기저귀와 간식거리를 챙겨 나섰다. 퇴직 후 내일 출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홀가분함 덕분인지, 요즘 우리 부부는 어디 가자는 말만 나오면 앞뒤 재지 않고 발걸음을 옮기곤 한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생각으로 망설임 없이 비를 뚫고 차를 달렸다.



정비 공사로 조금 달라진 전등사 주변 풍경을 지나 안내판을 따라 북문 쪽에 주차를 했다. 성문 사이로 보이는 산사의 초록이 빗물에 씻겨 유난히 싱그러웠다. 비 내리는 흙길을 유모차를 밀며 올라가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진흙이 된 길에 바퀴가 빠져 낑낑대며 올라가야 했다.

숨이 조금 가빠질 때쯤 전등사 입구에 다다르자, 수백 년의 세월을 버텨온 우람한 고목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세찬 바람과 빛을 따라 몸을 이리저리 휘어가며 자란 아름드리나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이로운 예술 작품이었다. 어느덧 부슬부슬 내리던 비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전설의 은행나무

전설의 은행나무 ⓒ 홍영미


모진 세파를 견디며 몸을 굽힌 고목들을 바라보았다. 그 낮춤은 홀로 살아남기 위함이 아니라, 제 아래 자리 잡은 어린 풀 한 포기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그늘 한 자락을 더 내어주기 위한 포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중한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기꺼이 자신을 굽힐 줄 아는 겸손, 그것이 수백 년을 살아낸 나무가 내게 건네는 엄중한 가르침이었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니 전등사의 유명한 전설을 품은 은행나무가 보였다. 과거 가혹한 수탈에 시달리던 스님들이 3일 기도를 올린 후부터 단 한 알의 열매도 맺지 않게 되었다는 '노승나무'와 '동승나무'다. 가혹한 요구에 열매를 맺지 않는 방식으로 무언의 저항을 했던 두 나무는, 이제 열매 대신 울창한 초록 그늘만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었다. 비워냄으로써 저항한 나무의 마음을 헤아리니 산사의 빗소리가 더욱 깊게 들렸다.

대웅보전으로 가기 위해 '대조루' 밑을 지나갔다. 지면과 사이를 두고 지은 누각인데, 전등사의 핵심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누각 아래 좁은 계단을 오르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면 대웅보전의 본존불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있다. 낮은 곳에서 가장 고귀한 곳을 바라보게 만드는 건축 구조에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였다. 마당에는 지난 석가탄신일의 여운이 담긴 오색 연등이 빗방울을 머금은 채 불을 밝히고 있었다.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이라는 명성답게, 전등사 마당에는 귀한 보물들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1621년(광해군 13)에 중건된 대웅보전(보물)은 조선 중기 목조 건축의 으뜸으로 손꼽힌다.


대조루

대조루 ⓒ 홍영미



대조루에서 바라본 대웅보전

대조루에서 바라본 대웅보전 ⓒ 홍영미


대웅보전 앞마당에 서서 처마 밑을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기둥 윗부분에 조각된 '나부상(裸婦像)'을 찾기 위해서였다. 재물을 가로채 도망간 주막 주모에게 벌을 주려 도편수가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을 새겨 처마를 받치게 했다는 애달픈 전설이 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네 곳의 모양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두 곳은 두 손으로 처마를 받들고 있지만, 나머지 두 곳은 한 손으로만 슬쩍 받치고 있다. 벌을 받으면서도 슬그머니 꾀를 부리는 듯한 모습에서 선조들의 재치와 익살이 느껴졌다. 물론 학계에서는 이를 불법을 수호하는 '나찰'이나 '야차' 등으로 해석하기도 하니, 하나의 조각을 두고 여러 역사와 전설이 겹쳐 흐르는 셈이다.

문을 열고 대웅보전 내부로 들어서면 화려한 '닫집'이 시선을 압도한다. 천장 위로 용트림하는 용두가 돌출해 있고, 연꽃과 모란이 정교하게 양각 되어 있다. 특히 천장에 물고기가 새겨져 있어 마치 깊은 바닷속 용궁에 들어온 듯한 신비로운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불단 위에는 조각승 수연이 참여해 만든 원만한 상호의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이 인자한 미소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등사에서 보물찾기

대웅보전을 나와 서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대웅전과 닮은꼴인 약사전(보물)이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다. 내부 천장 가득 화려한 연화당초문이 그려져 있고, 최근 새롭게 금빛을 입은 고려 말의 석조 약사여래상이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계신다.

전등사의 보물 찾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명부전에는 인조 14년(1636)에 조성된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등 총 31구의 목조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일부 유출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여전히 104판이 남아 보관 중인 '묘법연화경 목판'은 일체중생이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품은 채 세월을 견뎌내고 있었다.

사찰 한구석에 매달린 '전등사 철종(보물)' 앞에서도 한참을 서성였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종과 달리 음통이 없는 중국 종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무려 1097년 중국 하남성에서 만들어진 종이다. 일제 강점기 말기 군수 물자로 공출 당해 녹아 없어질 뻔했다가, 광복 후 부평 군기창에서 극적으로 발견되어 돌아온 역사적 사연을 지니고 있다.

하늘에서 햇살이 쨍하게 났다. 마침 고등학생 한 무리가 단체로 올라오면서 고즈넉하던 사찰이 순식간에 활기로 가득 찼다. 대웅보전 부처님 앞에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기말고사 대박과 대기업 입사를 빌며 기도하는 여학생들의 순수한 소망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전등사의 보물들처럼 단단하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었다.


수령 300년 된 팥배나무

수령 300년 된 팥배나무 ⓒ 홍영미


삼성각을 거쳐 내려오는 길, 멀리 서 있는 팥배나무가 다시 한번 발길을 잡았다. 수명이 길지 않은 수종임에도 무려 300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내며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다. 이 귀한 팥배나무와 전등사는 병인양요의 불길과 구한말 의병들의 함성까지 묵묵히 지켜본 우리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전등사 전경

전등사 전경 ⓒ 홍영미


절 뒤편에서 내려다본 전등사의 전경은 아늑함 그 자체였다. 낮게 내려앉은 기와지붕들이 그 모든 아픈 역사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채, 현재라는 땅을 탄탄하게 딛고 들어앉아 있었다. 빗물이 촉촉이 젖은 초록빛 숲 풍경이 그대로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와 앉는 듯 평온했다.

세월이 흘러 정겹던 풍경은 빛바랬을지라도 비 온 뒤 맑게 갠 전등사의 초록빛 기운만은 그대로였다. 돌아오는 발걸음 위로 처마 밑 나부상의 해학, 그리고 기꺼이 몸을 굽혀 누군가의 그늘이 되는 큰 나무들의 낮춤이 선명한 풍경으로 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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