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옥등처럼 비출지어라, 전등사여!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21)] - 경인일보 202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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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25-12-12 09:33본문
‘소원’ 가득 담긴 정화궁주의 청동수조
단군 세아들의 삼랑성 품은 사찰
60~70년전 ‘신식 결혼식장’이기도
대웅보전 용마루 청기와 ‘후대 色’
려말 이색, 대조루서 바다 응시

강화 전등사에는 평일, 휴일 할 것 없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년에 100만 명 정도 찾는다. 전등사는 세로로 움직이는 시간과 가로로 연결된 공간이 만나는 교차점이다. 그리하여, 전등사 경내는 온통 오랜 이야깃거리로 넘쳐난다.
최근 조계종이 유명 사찰에서 진행하는 남녀 소개팅 프로그램 ‘나는 절로’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전등사였다. 전등사는 60~70년 전에도 젊은이들이 가정을 꾸리고 새출발하는 예식의 공간이었다. 강화지역 노인들은 전등사를 최초의 신식 결혼식장으로 기억한다. 1950년대 후반, 강화 사람들이 다들 신부 집에 가서 차양막을 치고 전통혼례를 올릴 때 전등사에서는 신랑은 양복을 입고 신부는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서양식 결혼식을 치렀다. 그때 전등사 결혼식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노인들이 강화에는 많다.
전등사는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그 5천년 내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야말로 유구한 사찰이다. 전등사를 품고 있는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의 성곽이니 가람의 터전으로 따지자면 우리나라 출발선에 가닿는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381년) 아도화상이 진종사(眞宗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라는 얘기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사고를 지켰으며,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 장군이 이곳에서 프랑스군을 패퇴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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